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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커먼뉴스

"리커창 사망당했다" 소문 확산

by archivememe 2023. 11. 5.

"리커창은 사망을 당했다"

살해까지는 아니지만 죽게 냅뒀다.

솔직히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시진핑이 왜 살려주것나..

 

심정지 환자를 장기간 치료 전문병원으로 후송. 시진핑 최측근, 사망 예견한 듯한 행동도

텐안먼광장에 수많은 추모객 몰려들어. 톈안먼 사건 촉발한 '후야오방 사망' 데자뷔

 

 

 

시나리오 이빨이 안맞아서 들통...??
10월27일 0시10분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상하이에서 휴식하던 중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리커창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이미 26일 늦은 오후부터 중국 내외 각종 SNS를 통해 흘러나왔다.

실제로 리커창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후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긴급 호송되는 동영상까지 공개되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런 SNS의 모든 소식을 즉각 삭제했다.

게다가 리커창이 사망한 후 8시간 가까이 지난 아침 8시에야 국영 CCTV를 통해 정식 발표했다.

리커창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14억 중국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리커창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8월30일 간쑤성 둔황시의 막고굴에서 이전처럼 건강한 모습이었다. 

 

당국, 검열 통해 리커창 추모 열기 제재

베이징에서 특정인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 톈안먼광장과 창안제가 '점령'당한 것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심지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이 죽었던 1997년 2월에도 이러진 않았다.


이런 광경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중국 SNS를 통해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국은 모든 삭제했다.

검열이 단행된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벌어진 추모 행사나 모임을 찍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10월28일 오후부터 중국 각지에서 묘한 소문이 떠돌았다. 리커창이 심장마비로 자연사한 게 아니라 '사망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의혹을 취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리커창이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받았는지, 왜 중의(中醫)병원으로 호송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리커창은 호텔에서 수영하던 도중에 갑자기 심정지를 일으켰다.
리커창은 현직처럼 수많은 비서와 경호원의 보호 아래 있었다. 이 중에는 의사나 간호사도 있다. 왜냐하면 리커창은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고 과거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정지는 5분 이내의 골든타임에 즉시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한다.

 

리커창이 앰뷸런스로 실려가는 동영상을 보면, 오직 한 명의 간호사가 옆에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게다가 리커창이 임종한 곳은 상하이중의대학 부속 수광병원이었다.

디진거 맞제?? 확인했제?

 

둘째

중국 최고지도부가 리커창의 급사를 마치 예상한 듯했다는 의혹이다.

한 달 전에 차이치가 리커창 경호요원에게 유언을 받아놓으라고 명령했다는 소문이 그 배경이다.

차이치는 지난해 10월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었던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이다.


그는 권력 서열 5위가 되었다.

중앙서기처는 공산당 내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중앙판공청은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핵심 포스트 자리에 있는 차이치가 리커창의 죽음을 예견하듯 대비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 공산당 지도자 중 '사망을 당했던' 예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리커창이 속했던 '공청단파'의 대부이자 한때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군림했던 후야오방 전 총서기다.

 

1982년 전인대 회의에서 덩샤오핑과 함께한 후야오방과 비슷하게 살해당한 듯

 

 

톈안먼 사건(천안문 사건)의 순환? 

리커창 행보와 상반된 시진핑에 대한 반발


1980년대 중반 중국에서는 경기 과열, 인플레, 부정부패 등 개혁·개방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따라서 1986년 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없이 현대화는 없다"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후야오방은 시위대를 옹호했다.

이런 행태를 보수파가 격렬히 비난하자, 이듬해 1월에 덩샤오핑은 후야오방을 희생양 삼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1989년 4월 중앙정치국 석상에서 발언을 마친 후야오방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자오쯔양은 즉각 의사들을 호출했다.
그런데 의사들이 들어오는 도중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혀 10분이나 지체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뭐여 이거 옴마 탱크여?

 

 

톈안먼 사건은 이렇게 후야오방이 급사하면서 촉발되었다.

전국적으로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고,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톈안먼광장에 몰려와서 후야오방을 추모했다. 사실 추모 강도와 깊이를 따지자면 리커창은 후야오방에 비교될 순 없다. 리커창을 향한 인기가 높긴 하지만 후야오방에 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왜 리커창을 이렇듯 추모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리커창의 행보와 상반되었던 시진핑에 대한 반발이다.


리커창 총리는 침체된 경제와 악화된 민생에 주목했다.

그래서 회의 기간 중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4450원)밖에 안 되는데 이 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힘들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중국의 심각한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던 것이다.

 

그와 반대로 직전 해인 2019년 10월 국경절에 시진핑 주석은 전혀 다르게 말했다.

"중국이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을 완수했다"고 선언했다.

 


2030세대, 시진핑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서

리커창은

팬데믹 기간 내내 경제와 민생을 챙겼다. 중국인들이 실생활에서 피부로 와닿는 행보를 펼쳤던 것이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앞세워 대외 영향력 강화에만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진핑이형 고마해~ 빨리 디져!!



지난해 11월말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백지 시위는 2030세대가 주동했고 급기야 "시진핑 하야"까지 외쳤다.

제2의 톈안먼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전 사회적인 통제와 감시체계를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

 

사랑해 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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