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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스토리

코카-콜라의 역사 (환타, 스프라이트, 닥터페퍼 역사)

by memewave 2024. 1. 29.

코카-콜라 출생의 비밀

하루에 5잔 팔리던 음료가 1초에 2만 잔이 넘게 팔린다.

1초에 2만 잔 이상이 팔리고, 세계 200여 개국에서 팔리는 코카-콜라의 첫 모습이 ‘동네의 이름 모를 음료’였다. 코카-콜라는 사실은 ‘와인’이 될 뻔했던 음료다.

 

코카-콜라의 초기 버전은 ‘와인’

 

세계 최고의 술을 만들 뻔한 존 펨버턴 박사. 난 위대해...

코카-콜라를 만든 사람은 ‘존 펨버턴(John Pemberton)‘ 박사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사로 일하는 그는 이런저런 약재를 배합하며 맛있는 음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음료가 처음에는 알콜이 들어간 음료였다.

 

이름은 ‘펨버턴의 프렌치 와인 코카(Pemberton’s French Wine Coca)’

이 음료는 결국 수정에 들어갔다. 와인을 없애고, 탄산이 있는 ‘소다수’를 섞어 마시는 음료로 만들기로 하였다. 또 콜라 열매를 추가해서 달콤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살렸다. 존 펨버턴의 회계사였던 프랭크 메이슨 로빈슨(Frank Mason Robinson)은 이 음료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코카-콜라(Coca‑Cola). 전설의 탄생

와인에서 음료로 바꾼 존 펨버턴 박사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향후 미국 전역에 ‘금주법(1919년 ~ 1933년)’이 시행되며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게 불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코카-콜라 병은 처음에 ‘직선’이었다.

 


 

존 펨버턴 박사가 만든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Asa Candler)를 만나 꽃을 피우게 된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천재였던 그는 ‘애틀랜타 명물’이었던 코카-콜라를 미국 최고의 음료로 만들어 놓았다.

 

동시에 문제도 생겼다. 많은 음료회사가 코카-콜라를 따라 하기 시작한 것.

 

지금까지도 비밀에 부쳐진 코카-콜라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병모양만 따라 하는 것으로도 소비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곤 했다. 코카-콜라 병은 초기에는 원통형 모양의 허치슨 보틀(Hutchison Bottle)에 담겼고, 이후에는 평범한 음료병에 라벨을 붙였다.

 

라벨만 따라 하면 코카-콜라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코카-놀라, 토카-콜라… 마 코카-코 이런 제품들이 양산되었다. 코카-콜라의 C를 K로 바꾼 제품까지도 나왔다.

 

 

 

아사 캔들러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다. 1915년 상금을 걸고 ‘코카-콜라 병’ 디자인 대회를 연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코카-콜라를 구별할 수 있도록 상징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병 ‘컨투어 보틀(Contour Bottle)’이다. 컨투어 보틀은 코카-콜라의 맛만큼이나 코-크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콜라 한잔하세욧 꺼억..

 

코카-콜라가 없어서 만들어진 ‘환타(FANTA)’?

 

올림픽과 함께 한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이후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 Woodruff)를 만나 한 차원 더 진화한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코카-콜라를 후원하면서,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코카-콜라가 사랑받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코카-콜라는 몇몇 나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중에 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코카-콜라를 잃어버린 독일은 비슷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알아낼 수 없었다. 

 

코카-콜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환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환타(FANTA)’였다. 전쟁 중 여러 가지 남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탄산음료를 만들어 냈다. 당시에는 환타 색 또한 지금과 다르게 코카-콜라와 같은 색이었다. 그렇게 환타는 당시 독일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국민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음료를 코카-콜라가 인수하고 재출시하게 되었다. 코카-콜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음료가 아닌 코카-콜라의 동료로 환타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제 이름은 ‘스프라이트’ 원래는 환타입니다

 

독일에서 환타였던 내가 ‘스프라이트’가 되었다.

환타의 매력은 다양함에 있다. 시기별로 나라별로 다른 환타의 맛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독립(?)을 하게 된 환타 맛도 있다. 바로 1959년 독일에서 개발된 ‘클리어 레몬 환타(Clear Lemon Fanta)’였다. 투명한 색상에 레몬의 새콤함을 담은 이 음료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프라이트(Sprite)’가 되었다. 

 

원래는 코카-콜라의 캐릭터 ‘스프라이트’

이전까지 스프라이트는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하는 ‘요정’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이 투명한 레몬 라임 탄산음료를 만나 큰 인기를 얻었다. 스프라이트의 시작이 환타였다는 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풋풋한 첫 모습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모두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료다. 언제나 맛있고, 하는 것마다 매력적이고, 멋진 이 음료들도 어설프면서도 풋풋했던 ‘첫 모습’이 존재한다. 시작은 소소했어도 더 맛있는 경험을 위해 열심히 한 모습들이 지금의 코카-콜라를 만들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감흥을 준다. 아직은 모자라더라도 더 짜릿한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갈증에 필요한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잔의 코카-콜라 그리고 이 음료에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가 접한 코카콜라의 전성시대와 마케팅

글로벌 마케팅으로 유명했던 광고

 

 

비슷한 다른 이야기로...

닥터페퍼의 첫 모습

닥터페퍼를 만든 사람은 닥터페퍼가 아니다.

 


코카-콜라와는 다르지만 ‘닥터페퍼(Dr Pepper)’는 매니아들의 독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닥터페퍼의 첫 모습은 의외의 혼돈을 일으킨다. 이 음료의 이름은 ‘웨이코’였다. 만든 사람의 이름도 ‘페퍼’가 아니라 ‘찰스 앨더튼(Charles Alderton)’이라는 약사였다.

 

‘닥터페퍼’란 이름은 왜 지은 것일까? 1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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