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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휴먼 스토리

32명 남자와 1명의 여자가 7년간 무인도에...'아나타한섬 여왕벌 사건'

by protocall 2024. 3. 4.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 

무대는, 미크로네시아 북서부의 열도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의 일부로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다. 

 


 

아나타한 섬 여왕벌 사건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다랑이잡이 어선이 요코하마항을 출항하여 마라리아 제도를 향한다. 일본 해군에 징용된 어선 수척에 각각 해군 2명, 징용어부 8-9명이 승선하여 사이판 부근을 향해 남하하고 있었으나, 이날 아침 이들의 어선은 미군 전투기에 발견되어 폭격을 받게 된다.

 

승무원들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섬에 도착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 섬이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이었다. 더욱이 이때 거의 같은 시기에 공격을 받아 침몰한 또다른 배도 아나타한 섬에 도착했다. 결국 군인 10명과 임시 징용선원 21명, 총 31명의 남자들이 아나타한 섬에 남게되는 운명이 되었다.

 

전쟁발발 전부터 일본 기업에 의해 야자재배를 하던 아나타한 섬에는, 약 70명 정도의 원주민이 생활하고 있었으나, 이 외에도 농원 기술자 남성 1명과 그의 부하직원의 아내인 히가 카즈꼬 등 2명의 일본인이 섬에 살고 있었다.

 
 



히가 카즈꼬(比嘉 和子)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카페에서 여급으로 일하고 있던 18세 때에 결혼하여, 22세 때 남편을 따라 아나타한 섬에 왔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파간 섬으로 여동생을 데리러 간다며 나간 그 길로 소식이 끊겼다. 무인고도의 초조한 상황 속에서, 농원 기술자와 카즈꼬는 자연스럽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농원 기술자와 카즈꼬는 농원이 있었으나, 30여 명의 남자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1개월도 못 버티고 식량은 바닥났기 때문에, 남자들은 각 그룹으로 나누어 토란 등의 농작물 재배를 시작했다. 그들은 살아 남기위해 도마뱀이나 박쥐 그리고 야자집게(Coconut crab) 등을 잡아 먹었다. 다를 살아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 섬 구석구석 찾아 헤메는 매일이었다.

 

 

 

 

그들이 상륙한지 1년이 지난 1945년 7월 중순에서 약 1개월 사이에, 아나타한 섬은 거의 매일 공습을 받고 있었다. 섬에 있던 원주민들은 미군이 데리고 가거나 탈출하여 언젠가부터 섬에는 한 명도 안 남게 되었다. 이 해 8월15일 전쟁이 끝났다는 뉴스와 같은 것을 알 수 없었던 이들은, 이전과 같이 미군의 모습을 보면 도망다니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9월 중순 무렵 미 해군 보트가 해안에 접근, 확성기를 통해, "일본은 항복했다. 섬에 잔류하고 있는 사람은 신속히 항복하여 미군 배에 승선하라!"고 종용했으나, 이때 누구 한 사람 곧이 곧대로 패전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고도의 남자 31명과 여자 1명은, 섬 서쪽에 있는 "손손"이라는 야자 농원 -> 섬 남쪽의 공장부지 그리고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섬에서 생활을 계속했다. 그들의 주식은 바나나, 토란, 사탕수수 그리고 원주민이 남기고 떠난 농작물 종자를 뿌려 키운 과일, 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해초를 먹었다. 이 외에도 도마뱀, 뱀 그리고 쥐 등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먹었다.

 

취사 중에 연기가 나면 미군 눈에 띄어 공습을 받을 것을 염려해, 취사는 아침에 하루 세끼분을 한꺼 번에 준비했다. 무엇을 하던 미군의 눈에 안 띄도록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고 있었다. 때때로 미군이 보트를 타고 섬에 상륙하기도 했으나 언제나 금방 철수했다. 미군이 사라지고 난 다음 담배 꽁초를 줍는 것이 당시의 이들에게는 무엇 보다도 즐거음에 하나였다.

 

섬의 풍부한 자연 환경 덕택에 차츰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되고 갑자기 공습이 없어지자, 섬의 생활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코코넛으로 술을 만들어, 달빛이 비치는 밤에는 파티를 열어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부터, 그들의 사이에서는 기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의 유일한 여성인 카즈꼬(和子)를 둘러싸고, 남자들이 서로 은밀하면서도 맹렬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농원 기술자와 카즈꼬가 지금까지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이 일로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카즈꼬는 도움을 청하는 형태로 농원 기술자와 동거하기 시작했으나, 독점욕이 강하고 질투심 깊은 농원 기술자는, 카즈꼬가 다른 남자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는 자주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또 A남자와 B남자라는 2인조는, 미군 폭격기의 잔해 속에서 망가진 피스톨 3정과 실탄 70발을 발견했다. 이 2인조는 그것을 해체수리하여 2정의 피스톨을 완성시켰다. 남자들이 무기를 손에 넣은 순간 비극의 막은 본격적으로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인조의 한쪽과 사이가 나뻤던 C남자가 결국 변사했다.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했으나, 2인조 이외의 목격자는 없었다. 이 뒤로 농원 기술자의 질투심에 질린 카즈꼬는 D와 눈이 맞아 산속으로 도망하기는 했으나, 워낙 너무 좁은 섬이라 결국 간단히 발견되어 농원 기술자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로 남자들의 카즈꼬 쟁탈전이 격화된다.

 

 

어느덧 쪽박난 피스톨 2인조의 한 사람 A남자는, 노골적으로 카즈꼬에게 끈적끈적하게 되었다. 드디어 어느 날 A남자는 카즈꼬에게 "너, 내 여자가 되라. 싫다고 한다면 농원 기술자를 죽이겠다."라고 협박했다. 카즈꼬가 이 사실을 농원 기술자에 전하자, 그는 공포심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질투심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깐. 그 놈 곁으로 가 버려라!"라고 카즈꼬에게 말했다.

 

결국 농원 기술자, A남자, B남자 그리고 카즈꼬 4명이 같이 살게되었다. 즉 카즈꼬는 동시에 3명의 남편과 살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일그러진 생활이 오래 지속될 텃이 없었다. 결과는 뻔했다.

 

 

섬 생활은 원시적 생활에 가까웠으며 짚신을 자신들이 만들어 신었다.

 

1947년 가을, 드디어 피스톨 2인조의 사이가 벌어져, B남자가 피스톨로 A남자를 사살했다. 다음 해 1948년, 이대로는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오는 것을 느꼈는지, 농원 기술자는 마치 물건을 취급하듯이 카즈꼬를 B남자에게 선물하고 자기는 도망갔다. 

 

그런데 그 뒤의 3개월이 지나서 B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B남자의 실종에 대해, 농원 기술자와 카즈꼬는 "B남자는 낚시하던 중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 라고 했으나, 사실 수영의 프로였던 B남자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까지도 B남자의 사인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살아있는 다른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줄어 든다는 사실은,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었으므로, 끈질긴 책임 추궁은 필요없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재판권도 없었으므로...

 

이런 일이 있은 뒤 반년 정도 지나, 이번에는 농원 기술자가 급사했다. 카즈꼬와 E남자에 말에 의하면, "농원 기술자는 식중독으로 죽었다." 라고하는 것이었다. 매일 같은 밥솥, 같은 냄비로 끓인 음식을 다 같이 먹고 이 한 사람만이 식중독(?)으로 죽었다. 그러나 A남자와 B남자의 사후, 그들이 만들었던 피스톨을 소지하고 있던 E남자가 농원 기술자를 사살했다는 용의가 가장 신빙성이 있었다.

 

 

"피스톨을 소지한 인간이 카즈꼬를 소유하는 권리를 갖는다." 라고 하는 절대적인 불문률이 암묵의 가운데 섬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 1948년까지 카이호우 마루 갑판장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뒤를 이어 아케보노 마루 갑판장이 식중독으로 죽었다.

 

어느 것이나 의문 투성이의 죽음이었으나, 사고였던 살인이었던 그들에게는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피스톨 소유의 E남자도 의문의 익사를 했다. "큰 파도에 휩쓸리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라고 하는 사건이었으나, 시체의 발견은 없었다.

 

 

 

 

좁은 섬에서 일어나는 이상적인 사건의 사태를 수습을 위해 최고 연장자인 F남자가 이런 제안을 했다. "카즈꼬씨에게 정식으로 남편을 선택하게 해, 남은 사람들은 이것을 축복해 주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도록 약속하자."라고, 카즈꼬는 내심, 남자라면 더 이상 지긋지긋 지겨울 정도라고 생각했었으나, F남자의 제안을 받아 들여, 하는 수 없이 최초로 눈이 맞아 도망했었던 상대인 D남자를 선택하여 결혼하기로 했다.

 

살아 남은 남자들은, 남태평양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의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에서 전대미문의 "Wedding ceremony" 올려 두 사람의 장래를 축복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던 피스톨은, 서로가 상의한 결과 두 정 모두 부수어 바다 속에 버리기로 합의하고 실행했다.

 

 

1949년의 가을, 미군이 항복을 권유하는 삐라를 뿌렸으나, 여전히 이들은 패전을 믿지 않고, 삐라를 뿌리고 가끔 상륙하는 모든 일이 미군의 모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110km 이상 떨어진 사이판에서는 불발탄 처리로, 이 때의 폭음이 아나타한 섬까지 들려와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었다.

 

다음 해 1950년, 사이판에서 폭발음이 딱 멈추었다. 이것을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확인할 용기도 수단도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에 또 미해군의 배가 섬에 다가왔다. 이 때, 언제나 같이 도망가는 일행과는 반대로, 카즈꼬는 혼자서 배 곁으로 접근하여 섬으로부터 탈출하였다. 그 배는 틀림없이 미군이 수배한 배였으나, 일본인도 타고 있었으며, 아나타한 섬의 잔류 일본인 구출을 목적으로 왔었다. 구출되었을 때 카즈꼬의 나이는 28살이 되어 있었다.

 

 

카즈꼬의 탈출 성공 후 구조대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6년만에 같은 여성을 처음으로 만난 카즈꼬. 오른쪽의 여성은 Elouise Johnson 소위의 부인

 

아나타한 섬을 순회하고 있던 미 해군의  "미스 스지 호"는 섬에서의 인기척을 느꼈다. 허리에 바나나 잎을 둘르고, 흰 천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여성을 발견했다. 종전과 함께 이 섬에 살던 원주민들은 이미 미군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왜 아직 이 섬에 사람이 살고 있는가? 

 

피곤하여 지칠대로 지친 카즈꼬의 사정을 들은 미군은 경악했다. 그리고 이 뉴스는 전 세계에 알려져 그녀는 비극의 히로인으로 일약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구출선의 일본인들과 카즈꼬는 편지와 일본 신문 등을 남겨 두고 갔으나, 그래도 섬에 남은 남자들은 종전의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2개월 뒤인 8월, 카즈꼬와 결혼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혼자 섬에 남아 외톨이가 된 D남자가 병사했다. 

 

6월에는 미국 비행기가 삐라를 살포하고 있었다. 삐라에는 "2-3일 중에 가족으로부터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라고 쓰여있고, 섬에 남아있는 전원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수일이 지나서 남자들 앞으로 진짜 편지가 도착했다. 맥아더 장군과 일왕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있는 신문과 함께였다. 남자들은 이제서야 겨우 현실로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다음에 미군이 오면 항복하자고 의논했다.

 

잔류자들이 실제로 미군에 투항했을 때에 찍은 보도사진 The last surrender of World War II - Anatahan, June 30, 1951

 

이들이 귀국 뒤 아나타한 섬에서의 기묘한 생활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공전의 "아나타한 붐"이 일어, 카즈꼬의 브로마이드(bromide)는 팔리고 팔려 나갔다. 한편 남자들은 그다지 소문없이 조용했으나, 왠지 카즈꼬만이 남자를 유혹하는 악녀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7년간 무인도에서 발생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카즈꼬는 "여왕벌", "아나타한의 독부(毒婦)", "아나타한 섬의 여왕", "31명의 남자와 할렘을 만든 여자" 그리고 "본능이라는 이름의 섬 아나타한" 등 갖은 소문에 괴로워 했다. 인내의 한계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그녀는 "나는 여왕벌이 아니다." 라고 매스컴을 상대로 폭발했다. 이때 돈 벌이를 위해 카즈꼬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났으며, 그녀는 이것을 이용하여 "아나타한 섬"의 진실을 알리려 했었다.

 

1953년, 카즈꼬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아나타한 섬의 진상은 이렇다"가 공개 되었다. 카즈꼬는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본인의 이야기를 각본으로 쓴 영화에 본인이 직접 출연한 것이다.

 

"아나타한의 진실은 이렇다." 라는 영화가 상영되어 인기를 얻어 성공하는 듯했다. 붐이란 곧 지나가게 마련이며 매스컴이나 흥행주로부터 이용당할 만큼 당하고 만다. 이러한 사회 습성에 질린 카즈꼬는 차츰 세간으로부터 잊혀가고 있었다.

 
 


"아나타한 섬의 진상은 이렇다"에 자극받아, 미국 영화 감독 요셉 스턴버그(Josef von Sternberg, 1894-1969)에 의해 "The Saga Of Anatahan(1953)"로 영화화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일본의 유명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 이라는 책의 모티브가 된다.

 

남자들이 카즈꼬를 차지 하기 위해, 그녀와 성관계를 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 사실이다. 헌데 언론은 그녀를 '아나타한의 여왕벌' '섬의 여왕'이라 부르며 조롱과 비난을 일삼았다. 중요한 것은 카즈꼬가 섬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카즈꼬, 그리고 주변에 대해 상황적인 묘사만 있었을 뿐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떻게 행동했고에 대한 부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그녀가 육체를 무기로 남자를 유혹하고 섬에 분란을 일으켰던 사람처럼 묘사된 건, 60여년 전의, 패망의 충격이 막 가시지 않은 시점의 일본 내부의 여러가지를 잠재우기 위한 여론 환기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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